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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과 악기
Central New Jersey Church of C 2011-11-22 추천 1 댓글 0 조회 1205



찬송과 악기

 

1. 구약 찬송(성전 찬송)

구약에서 찬송의 용례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로, 출애굽 때 홍해를 가르시고 애굽의 군사들을 물로 덮으신 하나님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더불어 찬송을 지어 하나님께 올렸다(출 15:1-18, 특별히 출 15:1-2을 참조). 물론 그 뒤 출애굽기 15장 20절에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여인들과 더불어 소고를 가지고 나와 하나님을 찬송했지만, 이 때 사용된 찬송의 뜻은 ‘노래로 이야기하다, 여호와를 높이다’이다.

 

또한 시편에는 수없이 많은 찬송의 용례(대부분은 성전찬송들임)들을 찾을 수 있지만, 대표적인 것으로 시편 30편 12절을 들 수 있다. 이 구절이 대표되는 이유는 이 때 찬송의 뜻은 ‘악기를 사용하여 노래를 부르다’의 의미이기 때문이다(시 30:12, 47:7, 71:22, 141:7 참조).

 

이처럼 구약의 찬송은 그 뜻과 사용에 있어 목소리와 악기가 둘 다 동반되었다. 그런데, 구약에서의 찬송은 그 목적에 있어서는 두 가지로 대비됨에 주의해야 한다.

 

즉, 하나님을 향한 찬송과 사람을 위한 찬송, 또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찬송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창세기 49장 8절의 ‘찬송’은 유다를 높이는데 ‘찬송’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고, 창세기 12장 15절(개역한글성경에는 ‘칭찬’이라 번역)과 사무엘하 14장 25절(역시 여기서도 ‘칭찬’이라 번역)은 사라의 아리따움이나 압살롬의 준수함을 칭찬할 때 사용되었다.

 

특별히, 아모스 6장 5절을 보자.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여기에 사용된 ‘노래’의 의미도 ‘찬송’의 한 용례임을 우린 어쩌지 못한다. 아모스 6장 1절부터 “화 있을진저”(마태복음 23장 13-26절을 참조)로 시작하는 이 시기는 사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중흥의 시대였다. 모든 것이 넘쳐났고, 문화와 예술 면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던 시기였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그 형식에 있어서는 더욱 정교해졌으며, 사람들은 하나님께 더 많은 제물로 드렸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대적에게 붙이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대적에게 패망할거라고 말씀하신다. 그 가운데 5절의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고’가 있다.

왜 “자신을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고”라고 적지 아니하고 ‘다윗처럼’이라는 단어가 이 구절에 포함되어 있을까?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다윗은 구약에서 악기로 하나님을 찬송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처음엔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다윗같이 하나님을 위하여 악기를 만들고, 하나님께 이 악기로 영광을 돌려야지.’ 그런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이 악기의 사용이 점점 하나님께로 그 영광이 가지 아니하고 그것을 만들고 연주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바로 이것을 아모스 선지자는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사야 43장 21절에서 이스라엘을 지으신 목적을 분명히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찬송이 다른 목적으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이미 찬송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에서의 ‘찬송’의 용례들을 통하여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찬송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2. 회당 찬송

기원전 587년 유다가 패망당하여 대부분의 이스라엘인들은 바벨론으로 잡혀가게 되었다. 이스라엘인들은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예루살렘성전에서 예배드릴 수 없음을 슬퍼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같은 지역에 사는 이스라엘인들끼리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회당의 기원이다. 그 이후 회당은 성장을 거듭하여 예수님과 초대교회 당시에는 로마제국의 전 지역에 걸쳐 회당이 있을 정도였다. 회당이 이스라엘인들의 생활이 되었고, 예배의 중심이 되었다. 예수님도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고(요 6:59, 18:20), 예배드리셨다(눅 4:16-30).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도 회당에서 예배를 드렸고, 복음을 전파하였다(행 13:5, 14:1, 18:19, 19:8). 그러므로 회당은 구약과 신약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교회의 찬송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회당의 예배순서는 찬송과 기도와 가르침(성서강해) 순으로 이루어졌는데, 찬송은 신명기 6장 4~9절의 ‘이스라엘아 들으라’를 노래하는 것이었다. 기도는 18기도문을 낭송했는데, 그 중심부는 세 개의 찬송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가르침에서는 성서가 읽혀졌는데(대부분은 성서를 암기), 유대인 성인 남자 모두는 성서를 낭송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쿰란문서에는 시편 낭송도 있었음을 보여준다. 시편은 잘 알다시피, 곡이 붙어있는 성서이다. 하지만 회당찬송에는 옛 성전찬송에서 볼 수 있는 악기연주가 사라졌다. 회중들의 참여는 단지 기도부분에서는 ‘아멘’이나 읽혀진 낭송에 대해 ‘그것이 확실하나이다’로 응답하였다.


악기연주가 사라짐은 물론 성전이라는 울타리가 없기도 했지만, 그 당시의 이스라엘인들에게도 아모스 선지자와 같은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교회 찬송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바벨론 포로이후, 이스라엘인들을 지배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이와 같은 고통을 받아야 했나?’는 자기인식이었다. 이것은 형식에 치우친 예배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이스라엘인들의 몸부림이었다. 그것이 이스라엘인들의 회당찬송에서 악기를 배제하는 한 요인이 되었다.


물론 이것도 변질되어 예수님 당시에는 마태복음 23장과 같이 “화 있을진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아”라는 지탄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율법해석(하나님중심이 아닌 자기중심적인 율법해석)과 언행불일치에 대한 예수님의 탄식이었지, 모든 이스라엘인들이 지탄받아야 할 것은 아니었다. 그 한 예로, 사도행전 2장 5절의 말씀을 들 수 있다.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성경은 디아스포라(흩어진 유대인들, 로마제국 전역으로 흩어진 유대인들로 그들 모두는 일 년에 세 차례의 절기[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이외에는 회당에서 예배드림) 유대인들이 경건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처럼 그들에겐 복음을 받아들일 만한 토양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바울은 각 지역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으며,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아나니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아볼로, 디모데의 할머니와 어머니 로이스와 유니게 등이 있다.


 

3. 신약 찬송 (교회 찬송)

신약에서 찬송의 용례는 네 가지로 나타난다.

1) 시(눅 20:42; 24:44, 행 1:20; 13:33, 고전 14:26, 엡 5:19, 골 3:16)

2) 찬미(엡 5:19, 골 3:16)

3) 신령한 노래(엡 5:19, 골 3:16) 또는 새 노래(계 5:9; 14:3; 15:3)

4) 찬송(약 3:10, 계 5:12; 7:12)


1) 시에는 구약의 시편과 신약 시대에 편재된 찬송시(고전 14:26, ‘각각 찬송시’, 시편만 있으면 그냥 ‘찬송시’라고 할 것인데, 각각 ‘찬송시’라고 하는 것을 보아 새로 첨가된 시가 있었음을 짐작케 함)가 있었다.
신약에서 부르던 시편은 곡조가 있는 시이나 회당 찬송과 마찬가지로 악기는 사용되지 않았다.

 

2) 찬미의 뜻은 “~을 향하여 노래하다”는 의미로 노래하는 특정한 대상이 있을 때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분명 ‘찬미’는 하나님을 향한 고백의 찬양이었을 것이다.


3) 신령한 노래, 또는 새 노래에는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여기 ‘노래’에 사용된 헬라어 원어는 성스러운 의미와 세속적인 의미를 다 포함하는 단어이다. 그래서 바울과 요한은 ‘신령한’ 또는 ‘새’라는 형용사를 붙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신령하고 새로운 노래란 곧 우리의 마음으로,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노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4) 찬송은 ‘좋은’이라는 형용사와 ‘말’이라는 명사가 합쳐서 만들어진 합성어이다. 그래서 그 의미는 ‘칭찬, 칭송, 높임’의 의미를 갖는다.
야고보서 3장 10절에서 이 말은 ‘칭찬’의 의미로, 요한계시록 5장 12절과 7장 12절에서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물론 ‘찬송’은 누가복음 24장 53절과 에베소서 5장 19절에도 나오는데, 여기서는 동사로서 ‘찬송하다’이다. 두 구절에 사용된 헬라어가 다른데, 누가복음 24장 53절의 ‘찬송하다’는 위에서 설명한 ‘찬송’의 동사로서 “하나님을 높이다. 주님을 높이 부르다”이고, 에베소서 5장 19절의 ‘찬송하다’는 앞에서 설명한 ‘시’의 동사로서 “노래하다”는 뜻이다.


부연하자면, 에베소서 5장 19절에 사용된 헬라어가 'psallo'인데, 시편이 곡조가 있고 악기를 사용했던 시의 모음이듯이, 이 ‘psallo’에도 악기사용의 의미를 부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오늘날 악기사용에 대한 가장 큰 논점이 되어왔다.
여기에 대해서는 구약의 시편이 예수님 시대에 와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말씀 드렸다. 악기를 사용하여 하나님께 노래했던 시편은 회당 예배로 오자 악기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마음으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자 하는 유대인들의 열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일치하게도 헬라어용법에서 ‘psallo’의 용례도 시기에 따라 의미가 바뀌게 된다. 'psallo'는 그것이 단어로서 기능한지 기원전 900년부터 300년(고대 헬라어에 속함)까지는 ‘퉁기다. 잡아당기다’의 의미가 있었다. 그러다가 신약시대와 중세시대 중반(기원후부터 약 1000년간)에는 그 의미가 완전히 상실되었고 ‘목소리로 노래하다’는 의미만 남게 되었다.

 

요컨대, 찬송을 제외하곤 나머지 세 단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는 ‘노래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것이 한꺼번에 사용된 구절은 신약에 두 군데 나오는데, 에베소서 5장 19절과 골로새서 3장 16절이다. 그런데, 이 구절들에서 바울은 그저 ‘찬양하다’라고 표현해도 될 것을 왜 굳이 이 세 단어를 다 사용하였을까? 그것은 강조의 의미가 있다. 바울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우리의 마음으로, 전심을 다해 부르기를 갈망했던 것이다. 그것이 곧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찬송이기 때문이다.


 

4. 믿음의 선진들의 증거들

교부들 중 저스틴 마터(기원후 100~165년)는 ‘트리포와의 대화’에서 “psallo는 전적으로 인간의 목소리로 부르는 찬양을 의미한다”고 하였고, 어거스틴은 “악기는 이교도들의 육욕적 예배 시에나 사용하는 것이다”(기원후 354년)고 가르쳤다. 그 외에도 크리소스톰, 클레멘트, 아퀴나스, 에라스무스 등 많은 교부들이 악기의 사용을 거부하는 글을 적었다.


종교개혁 이후
마틴 루터는 “하나님의 예배에서 오르간의 사용은 바알의 상징이다”(McClintock and Strong 성경백과사전, 8권, p. 739)고 했으며, 칼빈은 “하나님을 찬양함에 있어 악기의 사용은 구약의 율법의 그림자들, 곧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더 못하다”(시편 33편 주석)고 말했다. 그는 성경에서 말씀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예배 시에 사용할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하였으며 예배 시의 악기사용을 금하였다. 쯔빙글리는 악기를 매우 잘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배 시 악기사용을 인정하지 않았다. 감리교 창시자인 웨슬레 형제도 많은 복음성가를 작사, 작곡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배 시에는 악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요한 웨슬레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악기가 보이거나 들려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예배에서 악기에 대한 반대는 없을 것이다”(Clarke's 주석, 4권, p. 686).


침례교의 유명한 설교가
찰스 스펄전은 “악기는 찬양을 돕기보다 오히려 방해한다”(시편 43:4 주석)고 하였고, 침례교 신학자 앤드류 풀러는 “신약성경에서나 초대교회 때에는 악기사용을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악기의 사용은 이교도의 영역이다”(Works of Andrew Fuller, 3권, p. 520)고 했다. 감리교 신학자 아담 클라크는 “하나님의 예배에 있어서 악기사용은 그 어떤 좋은 것도 유발하지 못했다”(클라크 주석, 4권, p. 686)고 말하고 있다. ‘초대교회사’ 연구에 있어서는 필적할 만한 학자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에버렛 퍼거슨은 “초대교회 당시 기독교 개종자들의 특이할 점은 주님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악기사용에 익숙해 있었지만, 주님을 모신 후엔 악기 없이 노래 부르는 것에 익숙했다”(McClintock and Strong 성경백과사전, 8권, p. 759)고 적고 있다.


이처럼 교회의 시작이후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악기의 사용의 불합리성에 대해 단호하고, 신중하게 말해왔음을 우리는 살펴보았다. 그들에게 있어 하나님께 찬송함은 바로 우리의 온 몸과 맘을 드려 찬송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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