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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
Central New Jersey Church of C 2011-11-21 추천 0 댓글 0 조회 883



방 언

 

신약 성경에 방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된 경우는 두 군데다. 사도행전 2장 4-13절과 고린도전서 14장이다. 여기에 대해 살펴보자.

 

1. 사도행전 2장 4-13절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임하자 성령 충만을 받은 제자들은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 때 천하각국(최소한 15개국 이상)에서 온 경건한 유대인들은 각각 자기 나라의 말로 듣기 시작했다. 이 놀라운 광경 후에 베드로의 설교로 3,000명의 제자로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point는 세 가지다.

 

1) 여기에서 말하는 방언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방언이라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여기서의 방언은 서로 다른 나라의 말이다. 자신만이 아는 방언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사람들도 그 이야기 하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는 언어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나는 전혀 중국어를 모르는데, 중국어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사람들은 그 말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 다 알고 듣고 있다는 것이다.

 

2) 성경에서 이와 같이 제자들이 다른 나라의 말로 방언을 한 일이 있은 후로 그 많은 베드로 및 바울의 전도여행 중에, 제자들의 전도여행 중에 이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났다는 말은 성경에도 다른 문서에도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바울이 19장 1-7절에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안수했을 때, 그들은 예언도 하고 방언도 하였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14장과 관련지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구절이 나온 배경은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아볼로에게 맡긴 후 에베소로 갔을 때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3) 그렇다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본문 4절의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에 주목하자. 내가 주역이 아닌 성령께서 주역이 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강력하게 이 땅에서 시작하기 위한 성령님의 강한 주권적 역사라고 밖에는 다른 설명이 있을 수 없다.

 

요컨대,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진 지 벌써 2,000년이 되고 가고 있다. 만약 이 오순절 성령강림과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나라의 말로 방언을 하는 것이 단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면 2000년의 역사 속에 적어도 수십 번은 이와 같이 적어도 120명의 제자들이 15개국 이상의 말을 한 역사가 있어야 한다. 본문 11절을 보라.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는 영어성경으로 “we hear them declaring the wonders of God"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이 땅에 교회설립을 선언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독립선언문이 1774년 토마스 제퍼슨에 의해 적혀지고 필라델비아의 대륙회의를 통해 승인되었지만 그 독립선언문은 하나인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에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 또 만들고, 계속해서 만들어져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은 그 한 차례의 선언으로 미국은 독립국가로서 지금까지 왔다는 것을 우리가 아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의 감동으로 쓰인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데, 굳이 이와 같은 방언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방언을 통해 성령께서 선언하시고자 하는 또 다른 특별한 사건이 있는가?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천사의 나팔소리가 이와 같을지도 모르겠다.

 

2. 고린도전서 14장과 사도행전 19장 1-7절

이 두 부분은 고린도전서 13장의 의미를 파악하면(특별히, 8-13절) 소위 천국방언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

 

고린도교회는 영적으로 충만한 교회였다. 모든 은사에 대해 부족함이 없는 교회였다(고전 1:5-7).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교회와 에베소교회의 연장선에서 많은 기적들을 행했다(행 18, 19장 참조). 아덴에서의 전도 실패를 거울삼아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한 까닭이었는지 성령의 역사하심이 많았다(고전 2:1-5).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그 부분, 곧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한 기적과 은사만을 본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더 소중히 해야 할 부분, 곧 일치와 사랑에 대해선 너무도 부족한 점이 많았다. 물론 바울이 1년 6개월 동안 고린도교회에 머물면서 그들을 가르쳤음에도 말이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외의 다른 교회들에선 바울이 성령의 은사들에게 대해 그 많은 부분들을 할애하며 기록하지 않고 있다. 굳이 성령의 은사에 대해, 특별히 방언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이미 고린도교회를 통해 성령의 은사에 대한 훈련과 교육을 잘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대해선, 사도행전 19장이 잘 설명해준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떠나 에베소교회에 있을 무렵 고린도교회의 성령의 은사에 대한 치중과 분열에 대해 들었다. 왜냐하면 고린도전서 3장에 아볼로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9장 1절을 보라.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라고 시작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은사치중과 분열을 거울삼아 에베소에 있을 때에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강론하였고, 아시아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서, 또는 여기로부터 전해지는 가르침을 받았다(행 2:9, 10).

 

고린도교회의 이와 같은 은사치중과 분열로 인해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적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장”이라고 하는 고린도전서 13장을 적게 되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재미있지 않는가? 사랑장의 시작을 방언의 쓸모없음을 지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고린도전서 13장을 통해 14장과 사도행전 19장을 살펴보기로 하자.

 

고린도전서 13장 1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방언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이 그것이다. 사람의 방언은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다른 나라의 말”, 곧 “외국어”를 말한다. “천사의 말”이 곧 오늘날 소위“천국방언”이라는 것이고, 고린도전서 14장에 언급된 것이다. 하지만 어쩌나? 이미 결론은 나왔다. 방언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론에 덧붙여서 고린도전서 13장 8-13절을 살펴보자. 살펴보면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인 방언에 대해 오늘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1) 여기서 중요한 key point는 “온전한 것”(10절)에 대한 해석이다. 혹자는 “온전한 것”을 “예수의 재림”으로 본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말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바로 13절이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13절) 아니,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소망이 왜 필요한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우리의 소망인데, 예수께서 재림하신 후에 또 달리 소망해야 할 것이 있는가? 새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다 완성되는 것인데, 또 달리 소망해야 할 것이 있단 말인가 하는 점이다.

 

2)“예수의 재림”에 대한 바울의 표현들을 살펴보자.

 

고린도전서 1장 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

고린도전서 4장 5절, “주께서 오시기까지”

고린도전서 5장 5절, “주 예수의 날”

고린도전서 15장 51절, “마지막 나팔에”

골로새서 3장 4절,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데살로니가전서 4장 15절, “주 강림 하실 때까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절, “주의 날”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데살로니가후서 1장 10절, “그 날”

데살로니가후서 2장 1절,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

디모데전서 6장 14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디모데후서 4장 8절, “주의 나타나심”

디도서 2장 13절,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

 

여기 바울의 재림에 대한 표현들 중 “온전한 것”이 있는가? 없다. 그리고 바울은 “예수의 재림”에 대해 표현할 때 확실하고 선명하게 표현한다. 그래야 예수의 재림에 대한 잡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예수의 재림의 시기와 장소, 예수께서 오시는가에 대해서 초대교회 성도들 가운데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고전 15:50-58, 살전 5장 1-11 참조). 그렇기에 더더욱 바울은 “예수의 재림”에 대해서만은 표현을 정확히 했다.

 

3) 그렇다면 “온전한 것”이 무엇인가?

10절이 9절을 받는다면, 이 “온전한 것”은 예언이다. 즉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예언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예언이 폐하리라(9, 10절)라고 바꿀 수 있다. 곧 온전한 예언은 무엇인가? 말씀이다. 디모데전서 1장 18절을 보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가르친 말씀을 따라”행동하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온전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고, 그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러므로 온전한 것이 오면 방언도, 예언, 지식도 필요 없다고 했듯이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졌으므로 우리가 굳이 방언할 필요도, 굳이 예언할 필요도 없다. 성경 속에 있는 지식만으로도 충분하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성경만이 권위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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